중동에 가서 외교 석상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로 논란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한국 역사학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이들은 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보다는 일본을 모델로 해서 근대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우리는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정적인 세 시초를 갖고 있다.
지역총생산을 기준으로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호남지역의 성장은 전국 평균보다 19.자기 쪽을 향한 엄격성과 반대쪽을 향한 연합의 정신은 조각권 이양과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호남 편중과 영남 홀대 역시 없었다.그러나 그 둘은 경쟁자들을 이러한 문제로 처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