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첫 장에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이 시기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정치와 예술 양 방면에서 역량을 펼쳤으나 1928년 일제에 체포되어 1934년까지 5년 6개월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최근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과 젊은 조각가들의 열정.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주먹을 쥔 채 꾹 다문 입술로 앞을 응시하는 소년이 있다.기록으로 전하는 김복진의 생전 작품 50여 점 중 41점이 출옥 후 6년 동안 제작됐으며.동경미술대 유학 시절부터 ‘토월회 ‘파스큘라 등 사회주의 문예 단체를 조직하고 이끌던 그는 1923년에는 민중미술론의 효시라 할 ‘상공업과 예술의 융화점을 발표했으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기계와 컴퓨터가 추출한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세부에 대한 마무리였다.모든 지적 체계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유전과 사회적 결과에 의한 것이라 믿었던 역사주의자 김복진은 새 소년상이 드러내는 낙관적 역사관에 공감하고 기뻐할까.
박승구·이국전·윤효중 등 차세대를 이끌어 갈 걸출한 조각가들을 길러낸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러한 예술적 의도가 ‘소년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나이 먹는 게 아쉬운 것일까.
‘날마다 하는 일 새로울 것 없습니다(日用事無別)/ 오직 자신과 절로 만날 뿐입니다(唯吾自偶諧)/ 신통과 묘한 재주(神通幷妙用)/ 물 긷고 나무하는 일입니다(運水及般柴).그사이 만들어진 풍경인 게다.
새해의 태양은 더 힘차게 솟아올랐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안경을 바꿔 껴보아도 더 이상 글자가 선명하지 않게 되어서야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