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다산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찾다 보면 율곡 이이가 떠오른다.국민 모두는 참선비를 그리워하고 갈망한다.
이이는 물론 양친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전제군주 국가 시절의 이야기이니 통치자 군주야 갈아 치울 방법은 없으나.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
율곡과 다산의 진짜 선비 혼탁한 세상에 더욱 빛나 군주를 도와 나라를 안정 이제 그런 선비는 없는가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는 자운서원.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풍부한 학식과 탁월한 이론.그 결과로서 맺어진 조약의 1조는 강화도 조약 1조와 함께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
조선 왕의 지위를 자신과 같은 지위.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그랜트의 중재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류큐를 통째로 일본에 넘겨주었던 중국의 지도자 리훙장은 위안스카이를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에 직접 개입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