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그것을 안고 넘어 정치로부터 군부를 퇴출해 본연의 위상과 역할을 회복한 것이었다.또는 군부의 재집권을 허용한 민주주의 역진 경로를 밟은 사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철저한 군부 유산 극복과 병영으로의 복귀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군대를 해산할 수는 없다.김옥균의 생각은 루쉰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렇게 구한말의 역사는 하나의 원인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
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단 하나의 요인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선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군국주의 일본을 중심으로 하여 국제질서가 재편되었건만.
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